한일 언론심포지엄, 11월2일 일본 도쿄에서 열려

 일본 신문·방송·출판·영화·연극 노동자들의 모임인 매스컴문화정보노동조합회의(MIC) 소속 회원들의 한국 언론에 대한 관심은 실로 뜨거웠다. MIC와 전국언론노조 공동주최로 도쿄 YMCA 아시아청소년센터에서 11월2일 열린 양국 언론교류 심포지엄에 참석한 MIC 조합원들은 행사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전국언론노조 방일단의 발표를 경청했다.

언론노조 KBS본부의 지난해 95일 파업 관련 동영상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MIC 조합원들은 KBS 조합원들이 울먹이는 장면에서 안타까움을 나타내는가 하면 KBS, MBC, YTN, 연합뉴스, 국민일보 등 5개 언론사노조의 사상 최초 연대 총파업 소식에는 “일본 언론 상황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 했다.


 이번 행사는 한·일 양국의 언론 환경과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은 물론, 언론의 비판 정신을 드높이고 갈수록 열악해지는 노동 여건의 개선을 위해 양국 언론노동자들이 머리를 맞대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을 단장으로 김현석 KBS본부장, 김남중 국민일보씨티에스지부장, 권재현 경향신문지부장, 탁종렬 언론노조 조직쟁의실장 등 모두 5명의 대표단 일행이 지난 1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일본을 찾았다. 올 봄에는 MIC 대표단이 한국을 찾은 바 있다.

 <지금 한국의 미디어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주제로 발제에 나선 KBS 김현석 본부장은 대선 캠프 특보 출신 사장이 자신의 취임에 반대하는 YTN기자 6명을 해고하는 초강수를 두며 시작된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역사를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한국의 주요 방송사 수장 자리를 차지한 낙하산 사장들이 시사프로그램을 없애고 뉴스의 정권편향성을 강화하면서 1990년 노동조합 출범 이후 힘겹게 쌓아올린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밝혔다.

MIC 조합원들은 KBS에 이어 MBC마저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회피와 비판실종 등의 보도행태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대목에 특히 관심을 나타냈다. 청중석의 한 조합원은 지난 9월 한 주간지의 조사결과 MBC의 신뢰도가 해마다 빠른 속도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난 반면 KBS는 여전히 신뢰도 1위를 차지한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고 묻기도 했다.

김 본부장은 “저널리즘이 급속도로 파괴되고 관제·편파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한 KBS의 신뢰도가 여전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자체가 정권에 장악된 언론의 현실과 그에 따른 여론 불균형 현상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남중 국민일보씨티에스 지부장은 2011년 이후 전개된 한국 신문사 노조의 투쟁사를 발표했다. 그는 “신문의 공익적 역할에 대한 철학이 부족한 사주들이 소유 언론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보도 방향과 논조에 깊숙히 개입하면서 한국 신문업계에서 언론자유 수호 투쟁이 사주에 대한 투쟁의 형태로 터져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문사 파업으로는 최장기인 국민일보의 173일 파업,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로 노조위원장과 편집국장이 해고를 당하자 지역 시민단체·언론단체와 함께 끈질긴 투쟁을 벌인 부산일보 노조, 사상 초유의 편집국 봉쇄에 맞서 사주 퇴진 투쟁을 벌인 한국일보 기자들의 싸움은 모두 사주와의 투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MIC 조합원들은 “국민일보 노조는 권력과 자본에 포위된 언론현실에서 노조를 잃는 것은 기자의 양심을 지킬 마지막 수단마저 뺏기는 것이기 때문에 비조합원들과 편집국 간부들을 친위세력으로 앞세운 사주 일가에 맞서 6개월간 파업투쟁을 벌였다”는 김 지부장의 설명에 큰 박수를 보냈다.


<한국의 신문시장 현황>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권재현 지부장은 “한국의 신문업계는 산업적 측면과 저널리즘적 측면에서 모두 위기를 맞고 있다”고 규정했다. 종이신문 구독률 급감, 신뢰도 하락, 광고 의존 일변도의 안이한 경영전략, IT기술 발전에 따른 뉴스 유통 구조의 변화 등 거대한 파고 앞에서 신문사들의 재정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다. 뒤늦게 온라인·모바일 뉴스 생산 체제로의 전환, 프리미엄 콘텐츠 유료화 작업 등을 통해 활로 찾기에 나서고 있지만 무료 기사에 익숙한 독자들의 소비 패턴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소비자들이 지하철을 타면 십중팔구 스마트폰을 꺼내드는 언론환경에서 과거와 같은 종이신문 중심의 제작관행을 고수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거스를 수 없는 물살 앞에서 언론노동자들은 힘들지만 살아남기 위해 헤엄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다.

권 지부장은 “저널리즘의 위기는 여기서 비롯된다”며 “신문사의 재정 여건은 뼌한데 수익을 내야 하니 신규 인력 충원 없이 기존 인력들로 하여금 1인 다역을 수행할 것을 종용하면서 기자들의 업무 여건이 열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친 기자들이 권력 핵심부의 비리와 사회 부조리를 파헤치는 심층 보도보다 낚시성 기사와 상업적인 연성 기사 생산으로 내몰리면서 독자 신뢰도가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져든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권 지부장은 이어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눈치보지 않고 기자들이 양심의 소리를 낼 수 있고, 신문사가 특정 기업의 광고 압박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들의 알 권리 충족에 힘쓸 수 있도록 전 사회가 나서서 신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시스템 마련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대표단 일행은 고베로 이동해 미디어 수용자 단체인 'NHK문제를 생각하는 시민들의 모임'이 <양국 언론의 실상과 미디어 소비자들의 역할>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하는 등 공식 일정을 마치고 5일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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