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합법 가장해 진실 유린했다"

40년 전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맞서 언론 자유를 외치다 해직된 동아일보 기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24일 대법원 제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시효가 끝났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다고 판결한 원심의 결정을 파기환송했다.

청구권을 인정하고 소멸시효에도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보여 해직기자들에 대한 배상의 길이 열리는 듯 했다. 그러나 하급심이 자유롭게 판단할 수 없는 조건을 달아 사실상 원고 전원에 대한 패소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29일 오전 10시 30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비롯한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새언론포럼등 언론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합법을 가장한 꼼수 판결로 진실을 유린했다"고 밝혔다.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70년대 동아일보의 대량해직사태를 중앙정보부등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 사태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당시 해직된 동아일보 기자 134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했으나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대법원은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며 원심의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문제는 대법원이 원고 134명 가운데 진상규명신청을 한 50명만을 판결 대상으로 삼았고, 그 중에서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받은 36명에 대해서는 청구소송자격이 없다고 판단해 결국 생활보상금을 받지 않은 14명에 대해서만 시효를 인정한 것이다.

하급심에 제시한 조건도 문제가 되고 있다. 동아일보사가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취소 해 달라고 요구하는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점을 들어 그 판결에 따라 청구권 성립 여부를 판단하라고 한 것이다. 현재 동아일보사는 1심과 2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고 대법원의 상고심을 기다리고 있다.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동아일보사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재판은 하나 마나 동아일보사가 승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진실화해위의 결정이 무효가 되고, 파기환송된 14명은 더 모욕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비롯한 언론단체들은 "상고심 재판부는 1·2심처럼 국가기구인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판결에 적용했어야 한다"며 "차라리 재판부는 진실화해위 결정은 엉터리이므로 판결에 반영할 수 없어서 파기환송 한다고 솔직하게 밝혔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진실화해위의 결정은 단 한 명이 신청했더라도 그 효과가 해당자 전원에게 미쳐야 한다"며 대법원이 진상규명신청을 한 50명만 판결 대상으로 삼은 점을 비판했다.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사법 사상 길이 오점으로 기록될 재판을 규탄한다"며 "동아투위는 황당한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의연하게 자유언론을 위한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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