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피해자 조사 받은 MBC PD들 ‘국정원 문건’ 추가 공개돼야

‘PD수첩, ‘좌파세력 해방구’ 등 내용 충격적 “마치 간첩 보듯이”

“(국정원 문건은) 공영방송을 어떻게 정권의 입맛에 맞게 사유화하려 한 전략이었다. 지난 7년 동안 악행이 경영진이 판단해서 한 것이 아니라, 국정원 또는 국정원 위에 있는 사람의 판단을 아바타처럼 한 것이다. 충격적이다” (이우환 MBC PD)

“3월2일 김재철 사장이 취임한다. ‘문건’은 정확히 3월2일 생산됐다. 문건 상단에 ‘대외비 2010년 3월4일 파기’라고 되어 있다.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 김재철에게 전달되기 위해 작성되고, 숙지 후 파기하라는 것으로 보인다.”(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

지난달 9월28일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봤던 ‘국정원 문건’ 내용을 말했다. 국정원 문건을 보고 나서야 당시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경영진 행태를 알 수 있었다. 2010년 3월 <PD수첩> 책임PD였던 그가 창사기획단으로 발령 난 상황을 전했다.

“‘창사 50주년 기획단’으로 가라고 했다. 비 제작 부서다. 이주갑 시사교양국장은 ‘회사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인사위원회에 회부된다. 사장 지시다’라고 말했다. 저는 못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 다음날인 3월25일 김재철 사장 비서에게 전화가 왔고, 사장실에서 독대를 했다. 똑같은 이야기였다. ‘고생했다. 피디보다 다른 분야에 가서 능력 발휘하라. 최승호도 고생 많았는데 다른 일하면 잘할 것 같다. 최 피디는 국제행사 준비하려면 시간도 필요하니 프로그램 부담 덜어주고 싶다’고 했다.”

김환균 위원장은 자신의 사례를 설명한 뒤 “(국정원 문건처럼) 정말 촘촘하게 진행이 됐다”며 “이명박 정부 끝나고도 박근혜 정부까지도 그 문건은 계속해서 실행됐다”고 전했다.

‘국정원 언론 파괴 및 장악’ 문건 관련 피해자 조사를 받고 온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 최승호 PD, 이우환 PD, 정재홍 작가가 지난 9월28일 상암동 MBC에서 기자 간담회를 했다.

 

◇“PD수첩을 간첩 보듯이” =2010년 3월 작성된 국정원 문건대로 PD수첩 수난사가 시작됐다. 경질, 제작진 교체, PD수첩 진행자 폐지 등 포맷 변경, 사전 시사 운운, 불방, 해고, 징계.

이우환 PD는 “(문건에) 편파방송 주도해온 제작진 교체, 진행자 폐지, 포맷 변경 등의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은 국정원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국정원과 내통한 내부자가 있다고 확신했다.

이 PD가 검찰 조사를 보면서 확인한 문건에는 2010년 당시 MBC PD 명단이 ‘깨알’같이 있었고, PD수첩 PD를 ‘좌편향 일색’ ‘친북 좌파 성향’ 등으로 프레임을 잡고 ‘낙인’을 찍고 있었다.

이우환 PD는 “좌파, 좌경화, 건전세력 등 국가 공식 문서에서 쓸 수 없는 단어들로 도배가 되어 있다. 국가 권력이 공영방송을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것이었고, 마치 간첩을 보듯이 본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재홍 작가는 “PD수첩을 좌편향 제작진 일색, 좌파 세력 해방구라 했고, 상징성 때문에 부담스러운 PD수첩을 고사시키려는 전략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고 전했다.

국정원 문건대로 PD수첩의 ‘환골탈태’화는 ‘아이템 까기’로 이어졌다.

김환균 PD는 “당시 후쿠시마 핵발전소 문제가 터졌고, 체르노빌 25주년이었다. 난 체르노빌 10년 다큐를 만든 경험도 있어서 25주년 체르노빌 기획했는데 ‘칙칙하다’며 까였다”고 말했다. 김 PD는 이어 ‘고엽제 문제’를 발제했지만 “재미없잖아. 올드하잖아‘라는 이유로 프로그램 제작이 거부됐다.

정재홍 작가는 “4대강, 강정마을, 한진중공업, 노동 내지 통일 정부 정책 비판 아이템은 계속해 막았다”며 “심지어 대북 경협 2주기 프로그램을 위해 원주에 갔던 이우환 PD를 당장 회사로 오라고 했고, 이후 드라마 세트 관리로 보냈다. 이런 식으로 통제해 왔다”고 전했다.

정 작가는 간담회 도중 너무나 분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제주도 7대 자연경관 선정 관련 의문을 제기한 아이템이 찢겨져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뒤 김철진 CP가 자신에게 다가와 “야 정재홍 네가 하자고 했지”라고 말했다고 했다. 당시 김 CP는 짝다리를 짚고 있었고, ‘작가’라는 호칭도 빼버렸고, 그 뒤 ‘욕’을 하는 듯한 입모양도 봤다고 정재홍 작가는 전했다.

최승호 PD는 검찰 조사에서 본 VIP 보고 일일보고 문건을 전했다. 2010년 11월 문건에 최승호 PD 전출, 김미화 교체, 추적 60분 담당 피디 인사 조치, MBC경영진과 협조해서 봄철 개편 통해 보도본부 소속으로, 뉴스 수준으로 게이트 키핑 등 내용이 있었다고 전했다.

“KBS 추적 60분에 물어보니 제작진 교체 시도가 있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당시 추적 60분에서 4대강 아이템 불방이 있었고, 천안함 보도도 있었다. 제작진 교체 시도에 KBS PD들이 싸웠고, 실제 문건대로 이행되지는 않았다”

최승호 PD는 이어 2012년 1월15일 국익전략실 산하 국익 정보국 보고 문건에서 ‘부서 핵심 성과 사항으’로 최승호 전보, 김미화 방송 하차 조치 등을 꼽은 내용을 봤다고 말했다.

 

◇“지방사 매각 재원으로 MBC민영화”= 최승호 PD는 검찰조사에서 본 문건 중에 ‘민영화’ 방안에 초점을 맞춰 말했다.

최 PD는 “문건에 민영화 3가지 선택지가 나온다. 지방 계열사 광역화한다. 지방사 매각해서 그 재원으로 정수장학회 지분 30%를 사서 우리 사주 조합과 국민주 등으로 민영화 시키겠다는 계획이 일 번이었다”고 전했다.

이미 공개된 국정원 문건에는 ‘민영미디어렙 허가일정과 연계, 기형적 소유구조 문제를 공론화하여 공영방송 여부에 대한 정체성 논의 촉발’, ‘방문진 차원에서 철저한 관리감독으로 방만 경영 및 공정보도 견제활동을 강화, 스스로 민 공영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압박’, ‘MBC 민영화 관련 정치권 반발을 막기 위해 방통위의 민영미디어렙 허가문제를 연계, MBC 스스로 소유구조를 개편하도록 유도’, ‘궁긍적으로 MBC 구성원 스스로 민영화를 선택하도록 하여 현재 다공영-일민영 체제를 일공영 다민영 체제로 전환, 시장원리 확립’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최승호 PD는 “당시 김재철 사장이 (광역화를) 미친 것처럼 추진했다. 광역화 방안은 국정원의 방안이었다. 또 공정방송노조에서도 이 방안을 사내에 상당히 퍼트렸다. 민영화가 남는 장사라는 논리를 유포시켰다. 민영화하면 구성원이 부자가 된다는 논리였다”며 말을 이었다.

김재철 사장은 2010년 취임후 광역화 예상 지역에 겸임사장을 내려 보내는 등 통폐합을 밀어붙였다. 당시 노조는 강하게 반발해 파업 투쟁을 펼쳤지만, 2011년 8월 지역 MBC 구성원들과 시민들의 반대에도 진주 창원 MBC 합병이 강행됐다.

 

◇‘언론파괴 언론장악 공작’ 실체 밝혀야=국정원 개혁위는 <MB정부 시기의 ‘문화 연예계’내 정부 비판세력 퇴출 건> 중 ‘공영방송 장악 문건’이라며 <MBC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2010.3.2.),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 쇄신 추진 방안>(2010.6.3.) 딱 두건만 공개했다.

소위 ‘블랙리스트 문건’에서 나올 수 있는 ‘언론장악 문건’만 추측해 봐도 10여건이 넘는다. 또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이 언론파괴를 위해 만들어낸 문건의 규모는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이우환 PD는 “2010년 마스터 플랜이 작성된 것이며, 이후에 중간보고, 보충계획, 더 티테일 실행계획이 계속 생산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승호 PD는 “기대보다 검찰이 확보한 문건이 부실했고, 검찰과 국정원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국정원이 정말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잘못을 철저히 자백해야 한다. 관련 문건을 검찰에 넘기거나, 최소한 피해자들에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 PD는 이어 “국정원 직원이 쓸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내부 공범자들이 있다. 상세하게 논의해서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이며 개별 접촉 보고서도 있을 것이다. 서버를 검색하고 꺼내는 거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 이 정도로 해서 방송장악 적폐 청산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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