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보에서 매주 <‘언론 어때?’>라는 외부 칼럼을 연재합니다. 미디어에서 노동 인권 평등 민주주의 생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피고 돌아봅니다. 박장준 희망연대 정책국장이 <노동>을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인권>을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과 황소연 활동가가 함께 <성평등>을 주제로 칼럼을 씁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디어 내용을 비평합니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사무국장이 반가운 드라마로 ‘마녀의 법정’(KBS 2 TV)을 꼽는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를 접근하는 방식과 다뤄지는 내용 등을 심층 있게 분석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MBC KBS 공영방송 파업을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지지한다는 응원 메시지도 전해 왔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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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드라마 <마녀의 법정>이 반가운 이유

 

정슬아(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KBS 2TV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이 새롭게 시작됐다. 이번 주까지 4회 차가 방영된 이 드라마는 ‘아동학대, 성범죄, 혐오범죄 같은 평범한 생활반경 어디에서나 터질 수 있는 현실 범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법정 추리 수사극’이다. 여자 주인공이 메인인 법정드라마가 처음 제작되는 것이 아님에도 드라마를 주목하는 것엔 이유가 있다.

우선, <마녀의 법정> 여자 주인공 마이듬(정려원)은 그간 한국 드라마(특히 지상파)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여성 캐릭터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이듬은 자신의 욕심을 대놓고 표현하고, 정의롭고 겸손하기 보다는 출세를 위해 물불을 안 가리며, 헝클어진 머리와 바지차림을 즐긴다. 집은 업무관련 서류와 옷더미 등이 쌓여있어 지속적으로 지저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캔 맥주를 들이키며 트림하기를 즐긴다(?).

위 내용만 보면 여성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게 아닌데 무엇이 유의미하다는 말인지 의아할 수 있다. 그간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들은 착하고, 배려심과 이해심이 넘치며, 주체적이다가도 사랑에 대한 갈구와 함께 남성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그려져 왔다. 새로운 캐릭터라고 해도 ‘털털하지만 알고 보면 천상여자’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마녀의 법정>의 마이듬은 새롭다. 그리고 반갑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대중매체에서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해야 한다던 수많은 요구들은 ‘흠결 없는’ 여성 캐릭터를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들끼리

‘남자’와 관계없는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

마이듬은 직장 상사의 성추행을 증언해 여성아동범죄전담부(성범죄 전담 수사, 기소, 재판까지 동일한 검사가 전담하는 시스템)로 보복성 인사발령을 받게 된 ‘7년차 에이스 검사’다.

마이듬의 주변인물에는 남자 주인공 외에도 다양한 여성들이 있다. 여성아동범죄전담부를 만든 장본인이자 수장 ‘정의, 소신, 좌천의 아이콘’ 민지숙(김여진) 부장검사, 10년 차 수사관 손미영(김재화), 수석검사 장은정(전익령) 등이 그들이다.

또한 법정에서 마이듬과 주요한 대립구도를 갖는 ‘형제로펌의 에이스 변호사’ 허윤경(김민서)도 남자상사가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출세를 위해 주요사건을 맡고자 노력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더욱이 이들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극의 흐름을 주도하며 사랑(남자)을 두고 다투는 것이 아닌 자기 일과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마녀의 법정> 속 비교적 다양한 캐릭터와 여성들 간의 관계설정은 출연진의 성비를 다른 드라마와 다르게 만들었다. 총 12명의 주요인물 중 여성이 8명, 남성이 4명으로 두 배 차이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KBS 2TV <매드독>의 경우 전체 10명중 여성은 3명뿐이고, 2016년도 드라마를 기준으로 할 때 등장인물의 62.3%가 남성이고, 37.7%가 여성(방송통신위원회, 미디어 다양성 조사결과)비율임 고려할 때 <마녀의 법정>의 인물성비는 캐릭터에 대한 질적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미디어 속 여성비율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존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이것이 위에서 주인공이 아닌 조연 여성 캐릭터들의 이름과 직업을 애써 언급한 이유다.

 

 

성폭력를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에 문제제기 하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 드라마는 성범죄 사건을 다룬다. 특히, 언론에서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줬던 짧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논문 통과를 빌미로 교수가 조교에게 저지른 성폭력사건에 대한 판결 후 재판정을 떠나며 기자들은 “이 사건 죽이는데요?” 기사 헤드는 “최초 여성 강간범으로 헤드 뽑아”, “가해자는 여교수고 피해자는 호모야”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물론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며 가십거리로 다루는 기사들에 문제를 꼬집는 대사도 나온다. 어제오늘은 아니지만 요 며칠 자극적인 제목과 가해행위를 자세히 묘사하고, 피해자의 신상 파헤치기로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판결을 받은 가해자의 “무죄 받았으면 무고로 갚는다. 이게 성폭력 재판의 기본이야.”라는 대사나 “특종을 하려면 취재원하고 스킨십이 있어야지.”라며 여성 기자에게 성추행을 저지르는 남성 검사가 조사과정에서 “이런 게 성추행이면 대한민국 남자들 전부다 감옥가야 돼.”라는 뻔뻔한 말을 내뱉는 장면은 이 사회가 얼마나 가해행위에 너그러운지, 용인해주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드라마가 4회까지 진행되는 동안 다뤄진 키워드는 직장 선후배, 검사-기자, 교수-조교 등의 관계에서 발생한 위력에 의한 성희롱, 성폭력 사건, 몰래 카메라를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 등이었다. 많은 사람들이(특히 여성) 일상 속에서 직접 겪거나 목격하고 있는 성폭력의 문제를 단순 사건해결을 넘어 사회적 편견, 고정관념의 비판점을 비중 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주제를 설명하고 풀어나가는지는 중요하다. 그렇기에 <마녀의 법정>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성소수자의 성폭력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아웃팅을 종용해야만 했는지, 국내 성범죄 가해자의 90%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초기 에피소드로 여성이 가해자인 소재를 꼭 배치해야만 했는지, 주인공 마이듬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공감하기 보다는 재판에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캐릭터라고 해도 직접 몰래카메라로 인한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면 성폭력 피해를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릴 수밖에 없었는지(증거영상을 내놓으라고 주변에서 강요하는 장면 포함) 등.

아마도 드라마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아쉬움이 쌓일 것이다. 그렇기에 비판적인 의견을 포함해 더 많은 해석과 토론, 관심이 덧붙여질 필요가 있다. 시도가 있어야 실패도 있고 성공도 만들어갈 수 있고, 조금씩 더 나은 상상과 시도들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녀의 법정>의 출연 배우를 포함한 제작진들 역시 일상 속의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를 표현하는 보다 적절한 방식이 무엇일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러한 고민들이 꼭 빛을 바라길 바란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인생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 결과 여성들이 주요하게 등장하고, 극의 흐름을 이끄는 드라마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가 되길. 더불어 성별 고정관념 가득한 진부한 스토리와 캐릭터가 아닌 새로운 시도들을 다른 방송사, 제작자들도 서둘러 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말. : 파업 중인 두 방송사 중 KBS 드라마에 대한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 MBC드라마본부 조합원이 10월 22일 오후 9시, 주말특별기획 <도둑놈 도둑님>의 결방을 시작으로, <별별 며느리>, <밥상 차리는 남자>, <돌아온 복단지>의 ‘드라마 릴레이 결방’이라는 파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드라마 제작을 위해 참여하는 다양한 주체가 있는 만큼 드라마 결방이라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고,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즉각 퇴진요구, MBC의 정상화와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의 회복을 위해 MBC노조에 응원과 지지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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