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가 꽤 오랫동안 주요 미디어 이슈가 되어 왔습니다. 언론계 안팎의 목소리는 엇갈리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은 꽤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마치 한국 언론의 위기를 해결해 줄 유일한 대책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찜찜합니다. 벌금을 물리면 언론 개혁이 되는걸까? 징벌적 손배제가 어떤 맥락에서 출현했으며 어떤 효과를 만들어낼지가 궁금해집니다.

징벌적 손배제의 출현 배경이 되는 한국 언론의 위기 담론은, 사실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해왔을 뿐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신문의 위기를 중심으로 언론 산업의 위기 담론이 생산되어 왔습니다. 나아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기레기’라는 멸칭이 등장하며 언론 산업 뿐만 아니라 그 사회적・문화적 영향력과 윤리적 측면도 위기를 겪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에는 SNS와 유튜브 등 인터넷 매체들이 생산하는 정보, 허위 정보들이 문제가 되며 국면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징벌적 손배제, 사안을 단순하고 쉽게 만들 뿐
복잡한 문제 놔두면 진정한 문제 해결 어려워질 것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징벌적 손배제'는 정부와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주도 하에 한국 언론의 총체적인 문제를 해결할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했습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2020년 6월 언론에 의한 피해 보상을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매길 수 있게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제출했고, 그 해 9월에는 법무부가 언론 행위를 포함한 상행위의 피해에 대한 보상을 최대 5배로 상향하는 ‘상법개정안’ 입법을 예고했습니다. 올 해 2월에는 민주당의 ‘미디어·언론 상생 태스크포스(TF)’가 이와 같은 내용들을 포함한 ‘언론개혁 6법’을 조속히 처리하겠다 입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때 징벌적 손배제가 전제하는 문제와 해결의 구도는 단순합니다. 우선 언론에 의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가 악의적, 허위적 보도와 그에 의한 피해로 축소됩니다. 따라서 해결책은 자연스럽게 악의적, 허위적 보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고 고치는 것이 됩니다. 이렇듯 징벌적 손배제는 사안을 단순하고 쉽게 만듧니다. 사이다를 마신 듯한 청량감을 주니 시민들이 호응을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한국 언론의 위기는 단지 나쁜 보도를 생산하는 언론사와 언론인의 악의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하게도 경제적, 문화적, 제도적인 문제들의 총체적인 효과가 한국 언론의 위기를 만들어 냈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따라서 ‘징벌적 손배제’의 이러한 단순함은 그 자체로 나쁩니다. 복잡한 문제가 뻔히 남아있는데, 그것을 단순화하는 순간, 진정한 문제 해결로의 도약이 가로막히기 때문입니다. 과도하게 단순화된 처방인 징벌적 손배제는 언론 개혁이 아닙니다.

최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 현업단체들이 제시한 ‘4대 언론 개혁 입법안’은 징벌적 손배제보다 복잡하지만, 훨씬 더 현실적입니다. 4대 입법안은, 물론 언론 보도에 의한 피해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보다) 효과적인 구제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요구도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공영 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지역언론 지원 방안 마련, 편집권 독립 등도 요구합니다. 이처럼 번거롭고 어렵더라도, 우리는 문제의 복잡성을 직시하고 총체적인 문제 해결을 추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언론 개혁은 그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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