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KBS·MBC 판결의 의미와 의의

법원은 2012년 MBC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해고·징계당한 노동자들에게 '죄가 없다'고 했다. 파업을 이유로 회사가 손해배상을 청구 할 수도 없다고 했다. 검찰의 업무방해죄 기소 또한 잘못되었다고 했다. 1심과 2심 모두 무려 여섯번의 판결을 통해 2012년 MBC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대법원의 판결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법원이 계속해서 노조의 손을 들어준 이유를 중간분석 해 보는 토론회가 열렸다.

26일 오전 10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공정방송 파업은 정당, 공정방송은 기본적인 근로조건" 토론회에서는 언론노조 MBC본부의 소송대리를 맡고 법무법인 소헌 신인수 변호사가 '공정방송과 노동3권'을 주제로 발제를 했다.

신인수 변호사는 이번 판결의 쟁점을 총 네가지로 나눴다. 파업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목적이 정당한지, 단체협약 준수를 요구하는 파업이 정당한지, 국민참여재판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이다.

 



공정방송 약속 안 지킨 사장 퇴진 요구, 정당하다

MBC본부는 '공정방송과 제작 자율성 회복'이 파업의 목적이라고 주장한 반면, 회사는 '김재철 사장 퇴진'으로서 경영권에 간섭하려는 불법파업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김재철 사장이라는 특정한 경영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받고자 하는 데 있고, 공정성 확보를 위한 조치를 약속하고도 대화에도 응하지 않는 사장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하며 김재철 전 MBC 사장이 당시 공정방송협의회 정례 회의 및 임시회의 개최 요구를 계속 거부한 것 등을 토대로 파업의 주된 목적이 '공정성'에 있다고 보았다. (해고무효확인 2심판결, 서울고법 2015. 4. 29. 2014나11910)

그렇다면 '공정성'을 목적으로 한 파업은 정당할까. 법원은 방송법등 관계법령과 노사가 함께 협의하고 체결한 MBC 단체협약, 단체협약 내부의 '공정방송협의회 운영규정'등을 토대로 공정방송 요구가 파업의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법원은 회사의 공정방송 의무 위반이 "그 구성원인 근로자의 구체적인 근로환경 또는 근로조건을 악화시켰다"며 '공정방송'이 언론노동자의 근로조건임을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법원이 생각이 변화하고 있다"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판단으로는 법원이 단체협약 위반에 대해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고 인정한 대목이다. 신인수 변호사는 "단체협약의 준수를 촉구하는 쟁의행위는 쟁의행위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견해가 있었다. 사측은 단체협약에 보장된 공정방송 회복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분쟁'으로 파업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반면 노동조합은 사측의 공정방송 훼손으로 구성원들의 근로조건이 실질적으로 침해 된 이상 근로조건에 관한 것이므로 파업의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대립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법원은 "단체협약을 사용자가 지키지 않은 경우 그 준수를 요구하기 위한 행위는 (중략)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단체협약의 준수를 요구하는 쟁의행위가 '권리분쟁'으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는 경우, 사용자가 단체협약을 이행하지 않아서 노동자들이 근로조건을 원상회복하기 위한 쟁의행위도 금지해야 되고, 이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단체행동권을 인정한 헌법 제33조 제1항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해석이라는 점에서다.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의 유효기간 중 그 개폐를 요구하는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1992. 9. 1. 92누7733) 과도 균형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법원의 진보적인 모습이 보였다는 의견도 있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거대한 재벌 그룹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도 해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업이 망하면 국가나 국민이 생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가스공사 사건은 그러한 인식이 판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극명하게 드러난 예"라고 밝혔다.

가스공사 사건에서 대법원은 "기업이 잘 되고 새로운 투자가 일어나면 근로자의 지위로 향상되고 새로운 고용도 창출되어 결과적으로 기업과 근로자가 다 함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대법원 2003. 7. 22. 2002도7225) 신인수 변호사는 이 판결에 대해 "법원은 헌법에 없는 '경영권'을 창조 한 다음, 노동 3권에 우선하는 사실상 신성불가침한 권리로 승격시켰다"며 "전경련의 성명서라고 봐도 좋을 법한 판례"라고 말했다.

도재형 교수는 "하지만 한국은 대법원이 희망한 것과 달리 사회적 양극화가 극심해졌고, 그런 사회·경제적 상황은 우리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비정규직 보호를 도모하는 판결들, 근로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판결 등이 나타난 것은 법원이 이러한 상황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도 교수는 "MBC·KBS 판결은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방송의 공정성과 관련하여 근로자들 역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고, 그것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단체교섭사항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것은 가스공사판결에서 나타난 '기업만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고 근로자는 무조건 이에 따라야 한다'는 법원의 생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판결에 환호할 때 아냐, 공영방송 이미 망가졌다

정영하 전 MBC본부장은 "MBC 노동조합이 생긴 이후 27년동안 공정방송이 근로조건이라는 점을 한 번도 인정받은 적이 없다"며 "진보정권도 아닌 상황에서 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렸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정도라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판결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성우 우송대 방송미디어학부 교수는 "MBC는 소송을 하면서도 '져도 좋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며 "판결을 통해 환호성을 하는 동안에 공영방송의 건강함은 급속도로 와해 되고 있다.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시청자들은 공영방송에서 이탈하고 있다. 판결의 기쁨만큼 엄숙한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일 KBS본부 사무처장 역시 "지난한 싸움이 끝나고 수 년에 걸친 법정 투쟁을 하다보면 약자인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지치고 힘들어 자포자기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을 유도하는 것이 경영진들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성일 사무처장은 "공정방송이 근로조건이라는 판례가 나오고, 인정이 된다면 근로조건을 침해하는 사측과 권력을 지속적이고 상시적으로 모니터링 하는 제도가 보완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지배구조 역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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