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장형우 전신노협 의장, "편집위원회 설치로 기자 자존감 높여야"

지난해 11월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이 주장해온 신문사 편집위원회 설치 의무화를 규정한 신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반일간신문사업자의 편집위원회 설치 의무 조항은 2009년 미디어악법 날치기 통과와 함께 삭제돼 현재는 “편집위원회를 둘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만 남아있다.

장형우 언론노조 전국신문통신노조협의회(전신노협) 의장은 “신문사 편집위원회 설치 의무화는 기자가 특정 정파나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양심적 보도를 하도록 돕는다”며 “국회는 언론노동자들의 자존감을 높여줄 신문법 개정안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장형우 의장과의 일문일답.

장형우 전국신문통신노조협의회 의장
장형우 전국신문통신노조협의회 의장

▲현재 신문사 편집권이 독립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단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나온 ‘LH 투기 사건’ 관련 보도가 대표적이다. 당시 내가 일하는 서울신문 뿐 아니라 대다수 신문사 현장 기자들은 “LH 투기 사건은 문재인 정권의 문제가 아닌 만큼 ‘여당에게 악재’라고만 보도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편집국장이나 담당부장들은 이 같은 의견을 듣지 않았다. 신문사 편집권 행사 주체인 현장 기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보도에 반영하는 절차가 없었기에 발생한 문제다. 편집권 독립은 헌법 제21조에 보장된 언론·출판의 자유를 전제로 하며 언론·출판 행위를 실제로 향유하는 자들이 현장에 있는 언론노동자다. 공익과 정의에 초점을 맞춘 언론 활동이 자본과 정치권력, 시민 반응과 같은 외부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편집권이 독립됐다고 볼 수 있다.

▲소위 ‘기레기’가 생겨나는 이유도 편집권 독립 여부와 관련 있다고 보나?

관련 있다고 본다. 기자, PD를 포함한 언론인들은 기업 및 정부 부처에 대한 접근권과 질문 기회 등 권리와 권한을 보장받으면서도 공익에 기여하지 못해서 거세게 비판받는다. 이는 신문사 사주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편집권 독립을 확보해 자신의 입맛에 따라 언론을 악용하려는 사주에게서 벗어난다면 기자의 양심과 집단지성에 따른 보도가 가능해진다.

편집위원회 설치 의무화, 언론노동자 자존감 높여주는 계기될 것

시켜서 쓴 기사로 온갖 욕 먹으면 환멸나

▲신문사 편집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신문법 개정안의 의미는?

언론노동자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사주의 눈치를 보는 보도 책임자들의 지시가 아닌 기자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결과물을 내고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시켜서 쓴 기사로 온갖 욕을 먹으면 정말 환멸난다. 편집권이 독립되면 기사로 욕을 먹더라도 기자 개인의 판단 하에 나온 결과물로 개인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신문 편집위원회와 현재 언론사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독자권익위원회의 차이는?

독자권익위원회는 독자의 사후적 평가에 초점을 맞춘 기구다. 편집위원회는 기사 편집과 생산 과정에서 작동한다. 노조 대표, 주니어보드 대표, 편집국장, 주요 선임기자 및 사측 관계자가 모여 보도 방향이 편집규약에 부합하는지 실질적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다. 김승원 의원이 발의한 신문법 개정안을 보면 편집규약은 양심에 반하는 취재·제작 거부권과 편집·취재 윤리지침 등을 포함하도록 돼있다. 편집위원회는 편집권 독립이 이뤄지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편집위원회를 설치하면 취재보도, 데스킹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기나?

역동성이 생긴다. 편집위원회는 언론사 내에서 편집과 제작에 관여하는 집단의 의견을 하나로 종합하는 역할을 한다. 편집위원회 구성원들이 기사의 정치적 치우침을 점검하고 크로스체크를 통해 독자에게 판단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토론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한 신문사의 정치부, 사회부가 중구난방으로 다른 논조의 보도를 하는 일도 없어진다. 아울러 편집위원회가 온라인·모바일뉴스 제공에서도 하나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적한 낚시성 기사(기사 내용은 중립적인데 제목만 자극적인 기사)도 편집위원회에서 거를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신문협회와 신문방송편집인협회는 김승원 의원의 신문법 개정안이 편집권을 침해하는 과잉입법이라며 반대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신문사 오너가 편집권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돈 많은 사람이 언론사를 소유했다고 편집권을 갖는 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 사주는 ‘소유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언론인의 자율적인 취재보도를 보장해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언론사가 됐다. 한국 언론사 사주도 기자들이 양심에 따라 진실을 파헤쳐 보도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 사주가 언론사로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속 기자들은 기레기가 된다.

지지부진한 개정 논의, 국회 무관심 때문

신문법 개정 소요 예산 적은데다 언론사 지원 규정한 것... 어려운 일 아니다

▲20대 국회에서 우상호 의원의 신문법 개정안은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 김승원 의원 신문법 개정안은 현재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고 있다. 신문법 개정 논의가 늦어지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간 여당은 신문(레거시 미디어)의 파급력을 무시하고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유튜브, 팟캐스트 방송에만 매몰됐다. 하지만 그들이 다루는 정보의 원출처도 다 레거시 미디어다. 이처럼 1차적 진실 판단 기관인 레거시 미디어의 보도를 무시하고 동조현상만 즐긴 결과 자극적 제목만 뽑는 신문·방송 보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그 결과 4.7 재보궐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신문법 개정안은 예산도 얼마 들지 않는 데다 임의규정으로 언론사를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주의 눈치를 보느라 수익추구에 매몰된 보도책임자들의 자극적인 제목 장사를 막을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여야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국회가 관심 갖고 풀어간다면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국회의원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진실을 추구하는 취재를 보장하는 언론사와 그렇지 않은 곳에 속한 기자들은 질문부터 다르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억지 질문을 하는 기자와 국민이 궁금해할 지점을 짚어주는 기자, 두 부류로 나뉜다는 건 국회의원들도 알 것이다. 편집위원회 설치는 여야 유불리의 문제가 아니라, 후자의 기자가 많아질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조중동에 편집위원회가 생기고 현장을 직접 취재한 기자들의 의견을 반영할 구조가 마련되면 자본권력 편을 드는 논조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표현의자유를 보장하는 나라라면 기자들이 진실을 추구하는 취재를 하고 국민 알권리를 충족할 매커니즘을 만들어야 하며, 편집위원회 설치 의무화는 그 단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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